매일 아침 까를교를 걸었다. 숙소에서 제법 떨어져 있었음에도 새벽에 일어나 출근하는 시민들 사이에서 있었다. 블바타강은 고요했고, 비둘기는 평화로웠다. 나는 지금 그 언젠가 오랜 미래에 반복될 지도 모르는 이 우연의 시간에 프라하를 걷고 있다. 안녕 비둘기, 안녕 프라하.
책을 깨끗하게 보는 축에 속한 내가 가장 지저분하게 봤던 책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끈질기게 가방에 들고 다니며 손때와 가방때가 묻었기 때문이다. 그토록 끈질기게 가지고 다녔던 이유는, 그렇다. 읽기 어려워서였다. 끝까지 다 읽기도 전에 영화 "프라하의 봄"으로 발표 수업을 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벌써 20년이 다 되어간다.오맙소사.
다만 그 책으로부터 오래 기억하고 궁구했던 것은 그저 되뇌어 보는 "프라하의 봄" 그리고 니체의 "영원회귀의 신화"라고 할 수 있겠다. 언젠가 한 번 그 봄의 광장을 한 번 밟고 싶었다.
뜻하지 않게 어쩌면 이렇게 빨리 프라하를 찾게 될 줄 몰랐다. 니체의 말처럼 생의 우연에 감사할 뿐이다. 또한 정말로 이른 시각에 프라하에 도착했다. 부다페스트에서 출발한 야간열차에서 내린 시각은 새벽 6시. 프라하엔 포근한 비가 오는 중이었고, 너무 이른 시각이라 황망한 마음에 역밖에 나갔을 때, 집시 아저씨들은 내게 담배를 구걸했다. 프라하는 어둠 속의 아저씨들이 강렬한 인상을 더해줬다. 아오
바츨라프 광장을 가장 먼저 찾았다. 뭐랄까, 혁명의 도시에 왔으니, 인사를 먼저 드려야할 것 같다. 그리고 돌아올 때 다시 광장을 찾아야겠다고 다짐했지만 가지 않았다. 이유를 들자면 17가지 정도 들 수 있는데 그냥 넘어가겠다.
광장의 국립박물관, 공사중이라 들어갈 수 없다. 동상은 바츨라프 4세, 뒤에 사진은 체코 민주화의 공신 하벨 대통령이다. 영화 브이포 벤데타에 나오던 빅브라더를 닮았다. 민주와 절대군주의 이미지가 자꾸 겹친다. 영화를 괜히 봤나. ⓒKWON
여기가 바츨라프 광장이다. 예전 모습과는 달라졌다고 한다. 광장이라기 보다는 대로에 가깝다. 혁명의 전사들이 피를 흘린 곳에는 우스꽝스러운 광대가, 핫도그를 파는 수레가 자리 잡았다.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보다 더 쓸쓸한 사람이 많은 프라하의 혁명광장. 날씨마저 우중충한. ⓒKWON
하루면 다 둘러볼 수 있다던 프라하에 꽉 채운 3일을 머물렀다. 스쳐지나가기만 해야했던 루마니아와 부다페스트를 보상하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조금 여유를 내어서 체코의 하회마을 체스크 크롬로프 또는 독일 드레스덴으로 가려고 했었다. 드레스덴은 뮤니크에서 바로 생각을 접었고, 크롬로프는 한국 사람이 지나치게 많다고 해서 접었다.
프라하에서는 프리투어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라고 들었다. 다녀온 후기를 보면 하나같이 "강추"라고 덧붙였다. 프리투어를 신청하는 온라인카페 두 곳을 가입하고 결국엔 하나도 참여하지 않았다. 반나절이라도 참가해봐야지라고 큰 마음을 먹고 신청하려던 순간, 그날 부터 연말을 맞이하여 쉰다는 정보를 접했다. 우연이 운명이다. ㅋ 낯선 사람들과의 접촉을 이렇게 극구 회피하면서 낯선곳을 돌아다니는 나를 연구하면 어지간히 웃길 것이다.
그저 프라하의 봄, 혁명의 그 이야기만 알고 온 프라하에서 역사탐방은 어불성설이고 역시나 긴 시간을 삽질을 하며 관광도 아닌 것이, 탐방도 아닌 것이 며칠을 그저 그렇게 돌아다녔다. 쓰레기 이지X유럽 책의 일부분을 찢어서 결국엔 유명하다는 관광지를 둘러 보았다.
화약탑과 시민회관 ⓒ KWON
까를교 건너편에서 본 프라하성(성에는 끝내 가보지 않았다. 나도 참) ⓒ KWON
틴성당. 구시가의 중심 광장에 위치해 있다. 사람들이 바글거리고, 쓰레기통엔 생쥐도 바글거렸다. ⓒ KWON
시계탑 꼭대기에 올라갔다. 꼭대기에도 사람이 바글 거렸다. 아주 잠깐 맑아졌다. ⓒKWON
시계탑. 시를 맞추어 종이 울린다.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미스테리라고 한다. 몇 번을 봐도 그로테스크했다. ⓒ KWON
역시나 늦게 뜨고 빨리 지는 해 덕분에 심지어 흐린 날씨 덕분에 우울한 마음과 허기로 돌아다녔다. 겨울에 동유럽을 혼자 다니는 것은 참 별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겨울의 우중충하고 우울하며 그로테스크하기 짝이 없는 동유럽을 온몸으로 느끼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강추한다. 초우울한 가운데 따뜻한 뱅쇼를 마시는 웃고 즐기는 사람들가운데 극한의 외로움을 느껴보시길. 낄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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