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기차라면 자신이 있다. 베이징에서 백두산으로, 내몽고로, 청두에서 둔황이며, 우루무치며, 이닝이며 심지어 2박3일을 달리는 기차도 타봤는데 이정도 쯤이야. 하지만 어쩌면, 별로 크지도 않은 브라쇼브 기차역에서 플랫폼에 서 있으면서도 이곳이 부다페스트행 기차를 타는 곳이 맞냐고 물어봤던 것은 내가 알고 있는 야간기차에 대한 자신감이라는 것은 "중국야간기차"라고 한정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유럽의 야간기차는 소매치기가 워낙에 많다고 하니 기차, 에 대해서 무척이나 긴장을 한 듯 했다. 심지어 이 기차역엔 행선지에 대한 안내 표지라는 것은 절대 없다. 영어도 중국어도 아닌, 도무지 낯선 언어에 대한 긴장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언제 이해하게 될 지 모르는 의문의 기차표. 짐작해보자면, 부다페스트까지 가는 삯이 182.84 Lei, 그리고 침대 이용값이 73.80 Lei 라는 것인데, 부다페스트에서 프라하에 갈 때엔 한 장이었다. ⓒ KWON 노란색 침구가 인상적이라고 생각했는데, 흰색 커버를 준다. 베개며 시트며 이불 커버를 모두 셀프로 씌워야 한다. 참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 KWON 6명이 정원인 침대칸에는 나를 포함해서 세 명이다. 집시처럼 보이는 젊은 사내 한 명, 작은 얼굴에 연두색 바지를 입은 말끔한 청년 한 명. 두 사람은 쿨쿨 잘도 잔다. 나는 더웠다가 추웠다가, 잠든 듯 하다가, 깨고를 반복한다. 그런데 이놈의 기차는 정말이지 느린데, 심지어 몇십분씩 어는 곳에서는 한 시간도 넘게 서있기도 한다. 국경을 넘고 있었던 것이다. 드디어, 비행기가 아니라 육로로 국경을 넘는다. 그것도 참으로 편리하게 기차에 누워서 세관 심사도 없이 세수도 안한 얼굴로 여권만 주면 이렇게 손쉽게. 입출국 표시가 정말 귀여워서 마음에 든다. 망할 뮤니크에서 비행기는 왜 그려져 있나 싶어서 의아했는데, 비행기로도 입출국을 할 수도 있고 기차로도 할 수 있으니까 구별해 놓은 것이다. 게다가 화살표로 입출국을 표시하는 센스라니. ⓒ KWON 7시가 조금 넘어 날이 조금씩 밝아온다.기차 복도에서 한없이 밖을 바라보고 있다. 희미한 연무에 감싸인 풍경이 애잔하고 따뜻하다. 땡땡 부은 얼굴로 넋을 잃고 바라본다. 기차는 함부로 부다페스트를 데려다 주지 않겠다는 듯이 여전히 소걸음질이다. 이 시간과 저 풍경을 붙잡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이, 내일을 꿈꾸게 하고, 그 어느 너머의 공간을 꿈꾸게 하겠지.
브라쇼브에서 부다페스트 가는 기차 안 ⓒ KWON 브라쇼브에서 부다페스트 가는 기차 안 ⓒ KWON 부다페스트가 가까워온다. 부다페스트를 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자꾸 김광균의 '추일서정'의 한 구절,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를 떠올린다. 이런 뜬금없는 연상법의 근원을 추적해 보니 부다페스트는 어쩐지 쓸쓸하고 황망한 느낌의 소리를 가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직 무성음의 조합으로만 이루어지는 단어, 파열음과 마찰음의 조합이 주는 그 느낌이다. 아, 쓸쓸하다. 부다페스트, 라고 발음하면 또 한 편에서는 어느 광장에서의 함성이 들리는 것만 같다. 쓸쓸함과 함성. 어쩐지 응축과 발산의 조합의 쓸쓸한 부다페스트. 내 마음대로의 연상법은 늘 이렇게 뜬금없다. 기차는 1시간이나 연착이 되어 드디어 Budapest - Keleti 에 도착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야간열차는 중국이 최고구나.
드디어 부다페스트다. 기차역의 천장은 얼마나 나를 설레게 했던가. ⓒ KWON Budapest - Keleti 기차역 건물조차 예술이다. ⓒ KWON
역 앞 광장. 하늘이 맑다. 루마니아의 우울함이 사라진다. ⓒ KWON 밤의 Budapest -Keleti ⓒ KWON 아, 여기는 부다페스트다. 야간열차를 타고 국경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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