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에서의 이튿날 아침. 식당이 문을 열자마자 아침을 먹었다. 커피를 서너잔씩 마시고, 쏘시지도 먹고 베이컨도 먹는다. 두번씩 세번씩 먹었다. 언제 또 밥을 먹을 수 있을 지 모르니까.
오늘은 무얼할까 생각해보니 또 할 수 있는 것은 유명 관광지 답사밖에 없다. 뭐가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좀 싫다. 사람들이 사는 곳을 가고 싶어진다. 관광지 표시가 없는 호텔 뒷길을 가보기로 한다. 터널을 지나는데 이름만 들어도 찬란한 유럽의 터널이나 쓰촨성 어느 깊은 산속에서 조명도 없고 포장도 되어 있지 않던 질퍽한 터널이나 다를 게 뭘까 생각해본다.
세체니 다리의 일출. 7시가 훨씬 넘어서 해가 뜨는데 내가 굉장히 부지런해진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 KWON
호텔 앞 거리. 차도 사람도 거의 없다. 유럽여행 내내 궁금했던 것은 도대체 사람들은 어디에 사는 것일까였다. 건물은 많은데 건물의 창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 낮에도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았고 밤에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사람들은 어디에서 사는 것이야. ⓒ KWON
이곳이 동유럽이라는 생각을 가장 강하게 해 줬던 것은 저런 여성들. 거리 담배를 들고 다니는 여성들이 참 많았다. 멋있어 보인단 말이지.
ⓒ KWON
중앙역에 가방을 맡겨놓고 페스트 지구를 걷기로 한다. 이렇게 눈물이 철철나게 미치게 추운날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걷기를 선택한 것은 조금이라도 헝가리의 느낌을 내 걸음의 속도로 느껴보고자 한 것이었는데, 과연 잘 한 것이었을까. ㅋㅋ
강 건너의 국회의사당 ⓒ KWON
국회의사당 앞 도나우강변의 연인. 정말 추웠는데...ⓒ KWON
정말 웅장해서 기가 질린다. 그런데 관광객은 많은데 국회의원들은 보이지 않는다. 정말 조용했다. ⓒ KWON
1년365일을 의미하는 365개의 첨탑이 있다고 한다. 부지런히 일하자는 의미일 듯 한데, 그들은 부지런히 일하는지 모르겠다. 앞의 광장은 코슈트 광장이다. 한켠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는 이들이 보였다. 김춘수의 "부다페스트 소녀의 죽음"의 배경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1956년 헝가리 혁명의 현장이다. ⓒ KWON
의사당 맞은편의 박물관. 패스함. ⓒ KWON
학부시절 그녀와 나는 딱 한 번, 학번대로 짜진 조별 발표준비 때문에 몇 번을 모여 겨우 몇마디 나누었다. 이후로 아마 우리는 겨우 목례만 하는 사이었을 것이다. 서로에게 존재감 없이 각자의 삶을 살았다. 모르긴 몰라도 접점이라고는 없는 서로의 대학생활을 은연중에 '나는 너와 다르다'는 묘한 자기 우월감으로 '너는 왜 그렇게 사냐' 등의 태도로 곁눈질만 하고 끝냈을 것이다.
졸업을 하고 10년도 더 지나 우연히 어느 SNS 를 통해 문자로만 안부를 전하던 사이. "우리 절대 강가에서라도 눈도 마주치지 말자"(황인숙의 '강'을 패러디함)던 단호한 사이. 친밀하고 긴장된 경계, 그 지점의 얄팍한 선만 겨우 넘나드는 사이, 정도라고만 정의하자고 했던 후배가 있다.
말이 길었다. 루마니아를 떠나기 전에 그녀가 여행이 왜 좋냐고 묻는다. 몇 가지 이유 중에 가장 중요한 하나, '낯선 곳에서 집에서 새는 바가지꼴로 걷고 있는'게 좋다고 말한다. 새는 바가지"가 자학으로 이어지지 않는 낯선곳이 좋다. 아마 나는 그 때 지난 중국에서의 한달 여행 중에 저지르던 삽질을 떠올리며 말했을 것이다.
배낭여행 한 달 동안 그랬고, 계림에서도 그랬고, 홍콩에서도 그랬고 어디서든 늘 걷고 또 걸었고, 적당히 헤매고 적당히 어이없는 것들이 즐거웠다.
그래서 이번에도 걷는다.
그런데 낯선곳에서 집에서 새는 바가지꼴로 하고 있는 내가 너무 짜증이 난다. 춥고 배가 고프다. 지도를 들고 걷는데 여기가 거기같은데 도무지 표시가 없다. 지하철은 눈을 크게 뜨고 잘 봐야 지하철이라는 것을 안다. 유명한 곳이라고 하는 곳은 방향 표시가 있긴 한데, 과연 저곳이 저곳인지, 가라는대로 갔는데 찾을 수 없는 것이 태반이다. 돌아가면 그녀에게 말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꼴로 하고 있는 게 좋다고 한 것은 어느 장소에서나 해당되는 건 아닐 수도 있다고.
국회의사당 근처. 낡은 듯 발랄한 듯한 트램은 부다페스트와 참 잘 어울린다. ⓒ KWON
중앙시장 안 소시지 가게. 긴장해서 떨렸는데, 결국 사진을 찍고 저 주인아주머니에게 혼났다. ⓒ KWON
자세를 잡아 주는 젊은 주인님. ⓒ KWON
마늘이며 고추가 반입이 가능했다면 난 분명 샀을거야. ⓒ KWON
여행내내 굴라쉬와 함께 했다. 어떤 집은 맛있었고, 어떤 집은 맛없다. 이 집은 정말 양이 많았고 맛있다. 그것도 모르고 스파게티를 하나 시켰는데, 스파게티는 40분쯤 후에 나왔는데, 싸가지고 와서 내내 가방에 넣어 다니다가 결국은 버렸다. 굴라쉬는 정말 나를 반하게 했으므로 중앙시장에서 굴라쉬 소스와 파프리카 가루를 샀다. 냐하하. ⓒ KWON
배가 고파서 그냥 들어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인 여행객들이 더러 가는 모양이었다. 바찌거리 끝 중앙시장 맞은편에 있다. 마굿간처럼 해 두었고, 밥집이라기 보다는 pub 인 듯 했다. 좁고 높은 식탁에서 시끄러운 소리를 들으며 혼자 먹기에는 좋지 아니하였다. ⓒ KWON
이슈트반 성당을 찾아가던 길. 고층 건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느낌을 주는 이유는 외벽의 질감과 두꺼움에 있지 않을까 ⓒ KWON
이슈트반 성당 내부. 결코 이 사진이 웅장함을 나타내 주진 못한다. 아마 100분의 1도 안될걸. ⓒ KWON
추위 때문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계속 우울하다. 걸으면서 무언가를 얻고 싶었던 나는 허기짐과 추위와 자조감만 자꾸 더해진다. 드디어 오페라 하우스를 만났다. 기차시간까지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오후 3시가 넘어가자 급하게 해가 지려고 한다. 마침 부다페스트 오케스트라의 미니콘서트가 있다고 한다. 과감하게 표를 끊었다.
오페라 하우스 ⓒ KWON
정말 초미니 콘서트였는데, 몸도 마음도 많이 녹아들었다. ⓒ KWON
저 메조 소프라노언니는 얼굴이 얼마나 작은지, 씨디얼굴의 대표 한예슬과 경쟁시켜보고 싶었다. 이 공연을 보지 않았다면 정말이지 부다페스트는 너무 암울했을 것이다. ⓒ KWON
나란 여쟈, 지조있는 여쟈이므로 밤이 되어 점점 더 추워지고 가로등은 있으나 마나한 이 길을 또 걷기로 한다. 공연을 봤고, 뱅쇼도 두 잔이나 마셨으니까. 그리고 이제 마지막 기차역을 가는 길이니까. 그리고 아마도 다시는 겨울밤 부다페스트를 걷는 일은 없을테니까. ㅋㅋ
여진히 풀리지 않는 의문, 좁은 길에 건물은 빽빽하고 차도 많은데 대체 창문에 불은 왜 다 꺼져 있는지, 사람들은 대체 어디에서 살고 있는건지. 지도와 길은 왜 맞지 않는 건지. 의문의 부다페스트, 안녕.
다시 부다페스트 기차역. 겨울의 부다페스트는 정말 너무 춥다. 이제 베를린행 열차를 타고 프라하로 간다. 언젠가 부다페스트를 찾게 된다면 절대로 겨울은 아닐 거라고. ⓒ KWON
'앨범 > 소소한 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쩌다 얻어걸린, Vysehrad (0) | 2015.01.17 |
---|---|
프라하의 봄이 아닌 겨울 (0) | 2015.01.11 |
2014년 12월 12일의 부다페스트 풍경 (0) | 2015.01.05 |
부다페스트행 야간열차 (0) | 2015.01.04 |
춥고 우울한 Brasove와 빵덮개를 한 쇠고기 스프. (0) | 2015.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