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비셰흐라드
저 유홍준 교수로부터 유명해진 말,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다' 는 말을 나도 모르게 신봉해왔다. 비셰흐라드에서 나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반대급부, '보이는 만큼 알게 된다는 것'에 대한 화두를 던져 주었다.
St Peter & Paul 성당 내부. ⓒKWON
성당 안의 피에타 상 ⓒKWON
처음 들어가본 유럽의 성당, 부다페스트 마챠시 성당에서의 신선하고 경이로운 충격을 기억하고 있다. 이후에 몇몇 성당을 더 들어갔을 때에도 역시나 경이로움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이 피터앤폴 성당안에 들어갔을 때의 그 충격은 실로 대단했다. 앞서의 성당보다 화려함은 조금 뒤떨어지는 모양새였으나(그런 것 따위)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신성함의 그 느낌이라는 것은 전혀 느껴보지 못한 이질적이었던 것이다.
즉각적으로 헤르만헤세의 <데미안>에서 싱클레어가 서술하는 두 세계에 대한 완벽한 느낌이 떠올랐다. 밝음과 어둠, 따뜻함과 차가움, 정돈됨과 어지러움, 선과 악, 聖과 俗 의 그 세계. 성당 안은 완벽히 聖의 세계였다. 성당안을 감돌던 다른 곳에서 맡을 수 없던 그 냄새, 그 빛. 그 기운. 완벽하게 압도당한 채로 한 참을 서 있었다. 온 몸에 그 냄새와 부드러운 공기와 기운을 각인시키고 싶었다.
정신을 차리고 俗의 세계로 다시 돌아왔을 때, 돌아가면 정말 사진을 제대로 배워야겠다고 다짐한다. 이 충격의 공간을 글로도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진대, 사진만이라도 그 공기를 표현하고 싶었다. 사진을 찍으며 나를 얼마나 모질게 비난하고 안타까워 했는지 모른다. ㅠㅠ
스메타나의 묘. 왼쪽 비석 아랫 부분에 보면, 음표가 그려져 있다. 음표는 종종종 걸어나와 오래전 중학교 음악교실의 투박한 의자에 앉아 듣던 몰다우 강이 되어 하늘을 채웠다. ⓒKWON
드보르작의 묘 ⓒKWON
성당 옆으로는 일종의 국립묘지가 조성되어 있다. 몰다우강이 낳은 세계적인 음악가 스메타나와 드보르작의 묘를 비롯해 체코 작가의 묘도, 신부의 묘도 각각 모셔져 있다.
어쩌다 얻어걸린 브셰흐라드. 이렇게 어마한 감동을 줘도 되는건가 싶어진다.
저 멀리 프라하성 ⓒKWON
브셰흐라드 역에서 올라가던 길 ⓒKWON
돌아오던 날 아침 브셰흐라드 앞을 흐르는 도나우 강 풍경 ⓒKWON
돌아오던 날 아침 브셰흐라드 아래 ⓒKWON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날 밤 마지막으로 다시 프라하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시민회관에서 열리는 콘서트를 보기로 했다. 매일매일 거의 호텔 조식으로 하루를 연명하다가 큰 맘먹고 사치를 저질렀다. 시민회관 앞 맞은 편 백조의 호수 공연도 매우 끌렸지만 콘서트로 마음을 정했다. 브셰흐라드의 스메타나 묘를 만나고 돌아와서 여러가지 생각이 많았던 나는 그 언제 다시 접하게 될지도 모르는 프라하 시민회관 스메타나 홀에서 체코 관현악단의 스메타나 콘서트를 이미 발권하고 있었다.
화약탑 옆에 자리잡은 시민회관 ⓒKWON
공연팜플릿과 스메타나 홀 ⓒKWON
스메타나홀은 굉장히 컸고 무대 뒤 중앙 위쪽에 스메타나의 얼굴이 새겨져 있고, 좌우로 2층 3층의 객석이 있다. 그야말로 영화에서나 보던 오래전 유럽의 공연장에 내가 앉아 있는 것이다. 자리는 아주많이 비워져 있었고 ㅋ 관현악단의 규모는 작았다.
몇 곡을 지나 익숙한 스메타나의 몰다우(블바타)가 흐르기 시작한다. 음악을 듣다가 문득 유레카를 외치고 펄쩍 뛸 뻔 했다. 몰다우는 다름 아닌 체코인의 애환을 담고 있는 몰다우 강의 흐름을 나타내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껏 그토록 들었어도 그저 손바닥으로 박자나 맞추며 들었던 그 음악이 몰다우 강의 작은 흐름으로부터 시작하여 크게 휘돌아쳐 흐르는 체코의 역사를 대변하는 그 모습을 묘사했던 것이다.
그들의 연주가 뛰어나서 또는 스메타나홀의 구조가 음악감상에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에 문득 내가 지금까지 들었던 음악과 달리 들렸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크게 드는 생각은 브셰흐라드에서 모든 감각으로 받아들였던 그 충만했던 공기 때문이었을 거라는 것이 지배적이다. 십 몇 분 음악이 흐르던 그 시간 동안의 황홀함과 전율을 잊을 수 없다. 잊고 싶지 않다. 만약 잊혀진다면 꼭 다시 가서 듣고싶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믿음이, 보이는 만큼 안다, 라는 믿음에게 손을 건네주던 시점이 바로 몰다우(블바타)로 부터였다. 돌아와 스메타나의 나의조국 연작시를 다시 들으면서 새삼스럽게 알게 된 것이 연작시 1번이 Vysehrad 였다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아이와 같아서 내가 보는 사물과 세상에서 나를 키워갈 수밖에 없다. 여전히 내가 부족하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쉼없이 보고 겪어야만 하는 당위를 찾았다.
만나보지도 못했던 스메타나가 아, 나의 조국을 외쳤다면, 나는 정말이지 아, Vysehrad를 외쳐야만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