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고 우울한 Brasove와 빵덮개를 한 쇠고기 스프.
루마니아에 가게 되었다고 했을 때 몇몇 사람이 하나같이 했던 말은, 드라큘라의 나라에 간다고? 드라큘라 보러 간다고? 등의 드라큘라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글쎄 나는 처음 들어본 말이었다. 정말이지 몰랐다.루마니아와 드라큘라가 연관이 있는 줄은. 지금도 모른다 드라큘라는 사람인지 귀신인지. 그리고 정말 궁금한 건, 어쩌면 사람들은 드라큘라를 다 알고 있는건지, 어째서 나만 드라큘라에 대해서 모르는 건지.
내가 알고 있던 루마니아의 정보는, 십여년 전 대학선배가 장기출장으로 가 있었다는 것. 전화기술력이 부족해서 그 마르고 말많은 선배가 다니는 회사에서 전화선을 넣어주러 갔다는 것 정도. 그리고 또하나는 올림픽에서 체조경기에서 독보적인 우세를 보였다는 것.
이정도 수준의 정보를 가지고 아무런 조사도 없이, 급하게 사서 펼쳐보지도 못한 "이지 동X럽" 여행서(이 책 결국 프라하에서 올 때 찢어버렸다. 쓰레기다.기회되면 저자에게 꼭 따져물을 것이다.) 하나 들고 갔는데 루마니아에 대한 제대로 된 여행이 될리 만무한데 심지어 주어진 시간은 23시간에 잠도 자야하고 도시도 이동해야 하고... 뭐 그렇다는 말이다. 결국 루마니아 관광도 아니고, 여행도 아닌 정확히 "감상"으로 끝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루마니아만 "감상"한 것 같잖아. 결국 헝가리며 체코도 다 마찬가지였는데. ㅎ
아그네스발차의 음악에 완전히 취해서 흥분된 마음으로 브라쇼브에 내렸다. 비가 오락가락거리고, 심지어 너무너무 춥다. 시간이 없으니까 탐파산에서 붉은 지붕의 브라쇼브 일대를 내려다 보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왔는데, 비가 그치고 구름과 안개가 잔뜩 끼어서 전망은 포기해야 했다.
그럼 무얼해야 하나. 20시 05분에 떠나는 부다페스트행 야간열차를 예매를 해 두고(시비우에서 알려준 시간과 가격이 다르다. 내가 루마니아어를 배우든지, 시비우 기차역 아줌마가 영어를 배우든지가 아니면 영원한 미스테리로 남을 듯.) 어쨋든 구시가로 나가서 한 바퀴 돌고 오기로 한다.
4번 버스를 타고 여기가 시내겠거니 하고 내린 곳. 정면에 보이는 Sergiana에서 점심 겸 저녁을 먹었다. ⓒ KWON
구시청사 앞, 시비우에 비하면 이곳은 사람들이 넘쳐났다. ⓒ KWON
검은교회. 루마니아의 대표적인 고딕 건축물이라는데 1600년대에 화재로 인해서 교회가 탔다고 한다. 그 때 그을린 그대로 지금까지. 그래서 검은교회라고 한다. 겨울엔 3시까지 개방을 한다고 해서 들어가지 못했다. 왜 이렇게 빨리 닫는지 조금 억울했는데, 내 짐작이 맞다면 겨울엔 그 시각에 해가 지기 때문이다. ⓒ KWON
캐서린 문. 중세시대의 성문 중 남아 있는 유일한 문이라고 한다. 이후에 독일인과 동거하면서 독일인들은 루마니아인들의 성 출입을 막았다고 한다. 나쁜놈들. 후에 일부 허용을 했는데 루마니아인들은 이 문을 통해서 출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 KWON
슈케이 문 1800년대에 만들어진 신고전주의 양식. ⓒ KWON
고백하건데 나는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보다 지금 현재 유리문에 문을 내어 주문을 하고 빵을 내어 주는 저 빵집이 더 유혹적이다. ⓒ KWON
슈케이문에서 구시청사 쪽으로 내려오던 길에 뒤돌아 보았다. 춥고 을씨년스러운 돌길이 있는 좁은 골목길.
지금 나는 막 중세를 빠져 나와 커피향이 넘치는 현재에 왔다. ⓒ KWON
Strada sforii 입구. 슈케이 문에서 내려오면 왼쪽편으로 보이는 길이다. 폭이 120cm 정도 되는 루마니아에서 가장 좁은 골목길이라고 한다. 별 거는 없다. 거리에 개와 함께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 KWON
탐파산을 올라가지 않았기도 했고 시가지는 아주 좁았던 까닭에 한바퀴를 다 돌았는데 기차시간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다. 날은 어두워지고 배가 고프다. 시비우에서 조식 이후에 먹은 것이 없었으므로, 한참을 고민하다가 광장에 있던 중국집 간판이 걸린 집에 들어갔다. 주인은 중국사람이 아닌 루마니아 현지인이었고, 메뉴를 보니 코스요리 중심이다. 가장 만만한 볶음밥도 보이지 않아서 외로움이 밀려와서 도망치듯 나왔다.
한참을 배회하다가 시가지 입구에서 보았던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추천을 받아 먹었다. 춥고 배가 고팠고 우울했으므로 나는 따뜻한 국물을 먹고 싶다고 했고 쌀도 먹고 싶다고 했다.ㅠㅠ
전채요리가 메인만큼의 분량이다. 빵은 정말 담백했고, 구운 돼지고기는 다소 딱딱했다. ⓒ KWON
나는 분명 수웁,을 달라고 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칼로 자르기 시작했다. ⓒ KWON
밥이 있냐고 했을 때, 스칸디나비아식 밥이라고 추천을 했는데, 저 밥 참 묘하다. 밥은 밥인데, 죽도 아닌 것이 아이스크림도 아닌 것이 입에 들어가면 사르르 녹는다. 그리고 느끼하다. 다시 먹고 싶은 맛은 아니다. ⓒ KWON
밀가루 뚜껑을 따고 드디어 나타난 수웁. 이것은 Beef soup with vegetables and pastry cover 라는 이름을 가졌다.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어가며 첫술을 떴을 때 그 감동적인 맛이란.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니 저 긴 이름을 줄이면 "굴라쉬"가 아닐까 생각했다. 종업원에게 이것은 루마니아의 전통음식이냐고 했을 때, 그냥 이쪽 지역에서 많이 먹는 음식이라고 했다. 배가 부르니 이쪽 지역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 KWON
내 정녕 밥을 먹을 때 맥주를 먹는 사람은 아니건데, 스칸디나비아식 밥은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어서 맥주를 마시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저 곰은 루마니아 대표 맥주라고 했다. 맛은 곰스러웠다. ⓒ KWON
배불리 밥을 먹고 나니 마음이 조금 느긋해졌다. 아직까지 뮤니크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데, 나는 계속 우울했고(이것은 돌아오기 전날쯤에서야 나아진 듯) 루마니아 날씨는 더 우울했고, 물가는 생각보다 더 비쌌고, 뜻하지 않았던 독일에서의 지출 덕에 내 호주머니는 더더욱 우울했다.
헝가리에서는 나아지길 빌며 이제 다시 언제 오게 될 지 모를 루마니아의 밤을 즐겨보자며 다시 시가지로 나섰다.
낮에 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져 오고 있었던 것이다. ⓒ KWON
벤치에 앉아 한참을 구경했다. 아이들은 즐겁고, 엄마들은 따뜻했으며 나는 배는 부른데 정말 추웠다. 탕웨이와 현빈이 놀이공원에서 바라보던 <만추>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나의 느닷없는 연상법을 아끼기로 한다. ⓒ KWON
저 모녀는 참 보기 좋았는데, 나는 추웠으므로. ⓒ KWON
드디어 기차역이다.
친절하고 멋있는 아줌마도 부다페스트엘 간다. 이곳에서 사람이 웃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나도 처음으로 웃었다. ⓒ KWON
저어기 부다페스트행 기차가 들어온다. 나는 이제 부다페스트로 간다. ⓒ K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