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소소한 여행기

주마간산 Sibiu 그리고 Aspri mera Ke ya mas

투어플래닛74 2015. 1. 2. 00:35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눈을 떴을 때 밖은 깜깜했고, 여전히 라마다 호텔의 간판은 홀로 빛나고 있었다. 가방을 세느라 바빴을 텐데 더웠는지 나도 모르게 창도 열어 두었던 모양이다. 빗방울이  묻어 있는 창을 닫는다. 어제 겨우 혼잣말을 시작했을 뿐인데 창을 닫으며 익숙하게  내뱉는다.


- 뭐야 새벽 5시잖아.

아득해진다. 새벽 5시 기상이 웬말이야. ㅋ

계획이랄 것도 없지만 예정대로 10일 새벽에 도착하면 늦잠을 자고 천천히 시비우를 골목골목 다니고, 다음날 아침 일찍 브라쇼브로 가는 버스나 기차편을 예매하고 어느 까페에 앉아 부다페스트며 프라하를 계획해야겠다고 한 내 계획은 뮤니크에서 사라진 짐처럼 사라졌고, 시간개념이 무너진 나는 계속 꿈꾸는 것만 같다.

오래 샤워를 하고 가방을 싸고 6시 30분부터라는 조식에 당당하게 입장한다. 얼른 움직여야 하니까, 절대 배가 고파서 일찍 간 건 아니다. ㅋ

 안재현씨 반가워요. 그저께 손톱만한 창으로 노란머리 독일놈에게 쫓겨나는 거 지켜봤죠?

다  알아요, 부끄러워서 말 못거는거. 눈 부으셨네. 촬영 잘 하세요. 누나가 다 지켜볼거야. ⓒ KWON

 

기차역에 가서 브라쇼브에서 부다페스트 야간열차를 예매해야 하고, 브라쇼브까지 가는 방법도 알아봐야 한다. 그와 동시에 주마간산 시비우도 훑어야 한다.

 

사실, 루마니아에 대한 내 인상은 이 한장이 모든 것을 다 말해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텔에서 나와 기차역을 향해 걸어가던 중인데, 아침 8시가 다 되었는데도 거리는 어두웠다. 

아직 꿈을 꾸는 듯한 동유럽의 거리를 처음으로 내딛으며 나는 파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첫구절을 자꾸 되뇌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무언가 모호하고 몽환적인 느낌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 KWON

 

거리는 대체적으로 조용했고, 낡았으며 어두침침했다. 흐린 날씨가 한 몫을 했을 테고 겨울이 그분위기를 더했을 것이고, 아직 뮤니크의 충격이 그대로 있었기에 더욱더였을 것이다. 

기차역에서 시내로 가던 길. 역시나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 KWON

 

시비우 지역의 전통 건물 양식이라고 해야할까. 지붕 아래에는 창고를 지어서 곡식을 말릴 수 있는 공간을 두었고

 통풍을 위해 지붕에 숨구멍을 뒀다. 눈모양으로 만드는 센스는 누가 처음 시작했을까. ⓒ KWON

 

후마니타스 서점. ⓒ KWON

 

빵집. 낡은 건물이다. 좋다. ⓒ KWON

 

한산한 거리 낮은 색감과 할아버지의 낮은 걸음걸이. 오래 머물렀다면 저 길들을 더 많이 걸었으리라. ⓒ KWON

 

 

생각해보니 시비우에서는 아무것도 사먹지 않았다. ⓒ KWON

 

 어느 집 담벼락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저 차는 과연 움직이는 건지, 

힘쎈 장사가 손으로 번쩍 들어서 그냥 옮겨 놓은 건지 궁금했다. ⓒ KWON

 

 

 

기차역은 간판이 없었고, 건물 뒤에 기차가 서 있는 모습을 확인하고서야 기차역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매표소는 텅텅 비었고, 덕분에 오랜시간 통하지 않는 언어로 브라쇼브로 가는 기차를 예매했다. 브라쇼브에서 부다페스트로 가는 야간열차도 예매가 가능했지만 도대체 그 요금체계를 이해할 수 없었기에 브라쇼브에서 끊기로 한다.

벌써 시비우는 안녕이다. 이 모든 것은 비행장에서 우리를 내쫓은 노란머리 독일놈 때문이라는 것을 다시 상기하고, 호텔로 가서 짐을 챙긴다.

루마니아 돈이 모자라서 호텔을 나와서 환전을 하고 돌아선 곳의 골목길. 오래 기억에 남는다.ⓒ KWON

 

기차역 앞. 택시도 노랗고 건물도 노랗다. ⓒ KWON

 

정면으로 보이는 것이 기차역이다.간판도 없고, 더더구나 가방을 이고진 사람들이라고는 없었다.  결국은 서울역이니, 안동역이니 이마에 커다랗게 지명간판을 단 건물에, 낯선 지방의 냄새를 풍기며 오고가는 사람들이 없는 곳. 우리 기차역과는 다른 경험, 문화충격이란 것이 별건가, 내 미욱한 경험을 넘어서는 모든 것이 문화충격이다. ⓒ KWON

 

다시 호텔로 돌아가던 길. 처음으로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것을 봤다. ⓒ KWON

 

 

브라쇼브까지는 고작 150Km에 불과한데 3시간이나 걸린다. 기차를 타고 보니 그 까닭은 금방 밝혀졌다. ⓒ KWON

 

기차는 2량짜리였고 내부의 의자 구조 또한 독특했다. 한산 했던 까닭에 마주보는 4인의자가 있는 한 켠에 자리를 잡고 다리를 뻗었다. 가끔씩 이방인을 흘긋거리는 이방인의 눈길이 느껴졌다.

 

플랫폼도 없는 기차역. 선로를 그냥 건넌다. 이렇게 조그만한 기차역을 다 섰다. 한사람씩 두사람씩 사람들을 내려줬고, 뛰어오는 사람들을 기다려 줬다. 그리고 대부분의 기차역엔 저렇게 개들이 있었다. ⓒ KWON​

 

기차역 ⓒKWON

 

 

기차역 ⓒKWON

 

반갑다 양.  ⓒ KWON

 

더러 보이는 마을엔 모두들 종탑이 있었다. ⓒ KWON

 

 

 

천천히 달리는 기차는 다소 지루했다. 구름이 가득한 하늘 더러 내리는 빗방울. 좀 무덤덤했다. 동유럽에 대한 환상은 날씨탓인지, 시차 탓인지 그저 희미하기만 했고, 이어폰을 꽂고, 내가 이 기차를 운전하는 상상을 하며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노래가 자연스레 돌아가고 그리고 다음 어느곡이 흐르는 순간, 마음이 철렁하며 지금의 이 시공간이 온몸으로 합일되는 충만함이  마구 들이닥쳤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구나. 평소에도 좋아서 즐겨 듣긴 했지만, 이렇게 완벽한 느낌을 가지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간판 없는 기차역에서 그 느낌이  내가 이름하는 문화충격이었다면, 구름낀 우중충한 저 들판위의 기차에서 발견한 이 충격을 무엇이라고 표현해야할까, 를 나는 노트에 적었다.


...풍경과 음악의 느낌이 온전히 하나가 되는 느낌. 완벽하게 풍경의 모든 역사가 말을 걸어오는 기분, 문득 내가 발칸의 어느 지역사람인 이 기분. 이걸 대체 뭐라고 표현해야하지...

 

 

 

​그렇다, 뭐라고 표현할 지 모르는 것이었다. ㅋ 지금도  풍경이 내 가슴으로 마구 밀려들어오던 그 느낌을 뭐라고 표현해야할 지 모른다. (나중엔 뭐라고라도 표현할 수 있을 줄 알았건만.ㅎ)

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짐작하는 것은 그녀의 음성이 단순한 음파를 가진 소리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저 리듬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결국 그녀의 음악은, 그 음성은 발칸의 풍경과 역사와 문화 그 모든 것의 총체였다는 것이다. 어설프게 비유하자면 원서는 원서로 읽어야 제맛이라는 것이 이런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Agnes Baltsa - Aspri mera ke ya mas  

 

 물론 그녀는 루마니아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스스로 우겨보는 것은 그녀는 그리스태생이고 발칸반도 지역의 지역적 특색이 루마니와의 그 어떤 것과 접점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저 지구 반대편  낯설디 낯선 이국에서 어느 혼잣말 하는 나이든 기집애의 감성에 그 접점이 걸려 들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 때의 그 충격을 오래동안 간직하고 싶다. 이렇게 해서 루마니아는 아그네스 발차,라는 이상한 수식이 만들어져 버린지도 모르겠다. 상관없다. 어차피 공식발표는 없을 예정이니까.